[이슈&인물]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바이오산업 키운다던 정부, 획일적 회계잣대 들이대서야…”

입력 2018-05-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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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비 비용 처리 규제 2~3년 완충기간 둬야…지금 기준대로면 바이오 기업 창업 막혀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촉발된 바이오업계의 회계 논란과 관련해 “아직 바이오 시장 후발주자인 한국이 미국 같은 선진국에 적용되는 획일적인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오승현 기자 story@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촉발된 바이오업계의 회계 논란과 관련해 “아직 바이오 시장 후발주자인 한국이 미국 같은 선진국에 적용되는 획일적인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오승현 기자 story@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감리위원회의 2차 회의가 25일 열리면서 심의 결론에 촉각이 모아진다. 바이오 대표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논란에 휘말리면서 바이오업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연구개발비 무형자산화 논란을 일으켰던 셀트리온과 차바이오텍을 포함해 회계처리에서 연구개발(R&D)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지적된 제약·바이오업체 상위 10개사를 대상으로 테마감리에 들어가면서 관련 업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삼바 사태·테마감리 예정 ‘폭풍전야’

평소 바이오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이승규(57)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 부회장은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시작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면담을 요청할 정도로 해외에서 볼 때 글로벌 기업 삼성이 바이오업계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이 바이오업계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 논란으로 뭇매를 맞는 와중에도 최근 제2공장 생산제품 제조승인을 추가로 획득하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연구개발하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을 이번 회계 논란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시각에 대해선 “바이오시밀러는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경제성도 높아야 하기 때문에 합성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를 같은 기준에서 비교해서는 안 된다”면서 “획일적인 규제보다는 탄력적인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바이오업계에 적용되고 있는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은 국제회계기준(IFRS)을 국내 법과 제도에 맞게 만든 것이지만, 결국은 미국 기준이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산업 생태계가 건강한 미국과 달리 후발주자인 우리나라 상황에선 가혹하다”며 “선진국과 같은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먼저 “미국의 경우 정부에서 초기 스타트업에 매칭 그랜트 방식으로 R&D 비용을 대줘 민간이 바이오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며 “많은 유망 바이오 기업들은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에 따라 투자를 통해 상장되고, 신약을 개발했을 때 R&D 비용이 반영된 약가를 인정받아 이익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다시 그 이익이 R&D에 투자되는 선순환 생태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신성장동력으로 키운다면서…

하지만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개발된 신약이 20개 남짓에 불과할 뿐 아니라, 아직까지 연간 매출 1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라 불릴 만한 신약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 생태계가 이처럼 간극이 크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미국의 회계기준을 우리 바이오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용처리 규제에 완충 기간을 둘 것을 제안했다. 일반 제조업체가 연구개발비를 반드시 100% 비용처리해야 하는 반면, 제약·바이오업계의 경우 자산 처리에 있어 유연성이 존재한다. 이는 다시 말해 분식회계 발생 소지가 높다는 얘기도 된다. 금감원이 바이오 기업에 대한 ‘테마감리’라는 칼을 빼든 것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개발비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정부도 그동안 ‘신약’이라는 불모지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 가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힘쓰지 않았나”라면서 “힘들게 여기까지 온 만큼 갑자기, 또 일률적으로 개발비를 비용처리하도록 하지 말고 기업 상황에 따라 2~3년 정도 유예 기간을 설정한다면 현재의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나아가 지금의 회계기준대로라면 창업률이 뚝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놨다. 그는 “바이오벤처들은 투자를 받아 R&D에 집중해야 하지만, 엄격한 회계기준 탓에 자본잠식이 되면 국가과제에 지원조차 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면서 ‘벤처 창업’을 가로막아서야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R&D에 쓸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회계 처리를 두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게 되자 바이오협회도 상황 수습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최근 정부가 연구개발 비용의 회계처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규제만 가하는 데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야겠다는 판단 아래 업계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는 조만간 설문 조사를 통해 현장 의견을 한데 수렴하면 ‘산업계 의견’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바이오업계의 자금 확보 통로가 되는 기술상장특례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그는 “바이오는 연구개발에 많은 비용이 드는 데다 신약 개발 하나에 10~20년의 기간이 걸리는 만큼 기술상장특례만이 자금 조달의 유일한 길”이라면서 “거래소에서는 최근 규제를 완화하긴 했지만, 코넥스 시장에서도 (규제를) 풀어야 물 흐르듯 바이오업계에 자금이 돌고, 또 이를 토대로 업계가 성장·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최근 소규모 스타트업 펀드로 ‘숨통’

이 부회장은 지금은 바이오업계에 대한 투자가 더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바이오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벤처투자자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상장 직전의 기업 위주로 투자를 하는 경향이 커 바이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지난해부터 300억~500억 원의 소규모 스타트업 펀드들이 만들어지면서 투자를 통해 바이오업계의 성과가 창출됐다. 또 그 이익으로 다시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기 시작했고, 창업 벤처의 숫자도 늘어나 바이오업계가 ‘일자리 창출’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웃음 지었다.

‘퍼스트 무버’ 되라며 현실은 ‘이중규제’

범부처 바이오 분야 정책 컨트롤타워인 바이오특별위원회에서도 활동 중인 이 부회장은 미래성장동력인 바이오·의료 분야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면서 ‘규제 개선’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는 특히 전반적인 의료 분야, 그중에서도 의료기기, 체외 진단, 유전자 분석 등의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은 갈 길이 멀다고 토로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별 맞춤형 건강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의료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서다.

이 부회장은 “체외 진단과 의료기기 분야의 경우 정부에서 국가 R&D 과제를 주면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주문하면서도 이중 규제를 하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체외진단 기기를 개발하려면 두 단계의 규제 문턱을 넘어야 한다. 우선 보건복지부로부터 관련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네카)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도 통과해야 한다. 그는 “이들 두 규제 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는 거의 동일함에도 중복 제출로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는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신의료기술제도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 어디서나 타액, 혈액, 소변 등으로 편리하게 질환을 진단받는 유전자 검사 역시 국내에서 제품 개발이 만만치 않다. 체질량 지수, 카페인 대사, 혈압, 혈당, 피부 노화, 색소 침착, 모발 굵기 등 12가지 종류로 제한할 뿐만 아니라 항목별로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유전체 분석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이라며 “업계에서는 개인정보 비식별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 나가자고 하지만 업계와 병원, 환자 간의 믿음이 없어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부분에서 기존 규제의 틀을 깨지 않고서는 결코 ‘맞춤형 의료’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승규 부회장은…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연세대 공대에서 학·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일본 도쿄공대 연구원을 거쳐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를 창업해 13년간 운영했다. 이후 2012년부터 국내 바이오 산업 대표 단체인 한국바이오협회의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생명공학 분야 산업기술보호 전문위원, 스마트헬스 정책자문단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바이오특별위원회 민간전문가로도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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