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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야기 4.] 1918년 팬데믹 당시 한국에서는 인플루엔자를 무엇이라 불렀을까? (1)
오피니언 김택중 (2019-06-11 09:58)

기왕의 연재에서 ‘인플루엔자’라는 감염병의 명칭에 대해 논의해 본 만큼, 관련하여 이번 연재에서는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 요컨대 철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가 보기로 한다.

형이상학적 대전제 또는 종교적 신앙이 아닌 일종의 방법론으로서 과학적 실재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이에 따라 보편자 실재론이 아닌 유명론을 받아들인다면, 관찰 가능한 물리적 세계 속의 그 어떤 ‘것’에 이름을 붙여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존재로서 실체화할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달리 말해 그 어떤 ‘것’이든 이름이 붙어야 비로소 인류의 인식 체계 안에서 지각 가능한 실제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어떤 ‘것’에는 그 이름으로 표상되는 온갖 속성들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에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인류의 인식 세계 내에서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비존재에 해당한다. 생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이 곧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1)

기호학에서 말하는 지시어와 지시대상 간의 끝없는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직업적 훈련을 필요로 하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름과 그 대상이 서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이를 부정하면 처음부터 학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문의 세계란 극도로 정교한 기호학적 약속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학문적 논쟁이란 결국 학문의 세계 내에서 기존 약속 체계를 새로운 약속 체계로 바꾸거나 또는 기존 약속 체계에 변화를 가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특히나 자연과학은 그러한 학문적 약속 체계 가운데에서도 최고도의 정밀성과 정합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는 1990년대 국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을 타고 남발된 통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기표’ 같은 자크 라캉 류의 유사 기호학적 정신분석학 논설은 그저 농담이거나 난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이 오늘날 ‘과학적 의학’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한 것은 라캉의 예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처음부터 과학적 맥락의 약속 체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었거나 또는 유지가 불가능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 초반 주류 정신의학계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던 뇌와 신경계라는 물리적 실체, 그리고 당대에 문제시되었던 정신병(psychosis)을 철저히 외면한 채 무의식이라는 이데아적 추상과 신경증(neurosis)에 매달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원죄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지시어와 지시대상 간의 괴리에 대한 번쇄하기 짝이 없는 철학적 논설들에 애써 주목하지만 않는다면 학문적인 대상들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 곧 기호학적 약속 과정과 이렇게 해서 형성된 이름과 대상 간의 약속 체계는 훈련된 내부 구성원의 시각에서 보자면 너무나 자명한 것이어서 약속 체계에 균열이 생기기 전까지는 딴 생각을 품을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된다. 학문의 세계에서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달리 말하면 분류라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생물학의 세계가 분류학으로 시작하고, 진화생물학의 세계가 계통분류학으로 시작해서 심지어 계통분류학으로 끝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분류 작업을 통해 이름, 곧 칼 폰 린네의 이명법에 따른 라틴어 학명을 부여받은 지구상의 생물은 설사 그것이 화석만 남은 지질 시대의 고생물일지라도 인류의 인식 체계 안에서 종이라는 존재론적 지위, 곧 실체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과학이 아닌 종교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기독교도들의 경전인 구약성경 창세기 2장을 살펴보면 신의 창조 활동 중 재미있는 대목이 한 가지 눈에 띈다. 히브리인들의 신은 에덴동산을 만든 후 여기에 사람을 데려다 놓은 다음, 사람의 협력자로서 온갖 생물을 흙으로 빚어낸 뒤 이 생물들을 대상으로 사람에게 곧장 암묵적인 과제 하나를 부여한다.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생물 각각에 대한 이름 붙이기 과제였다. 사람은 이를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었던 듯하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기 때문이다.2) 요컨대 히브리인들의 신은 에덴동산에 생물들을 만든 뒤 작명을 통해 이들에게 존재론적 지위부터 부여했던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가 아닌 사람을 시켜서 말이다.

학문하기의 시작이 학문적 대상에 이름 붙이기와 분류하기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데 있다는 점은 생물학뿐 아니라 의학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사실이다. 의학에도 글자 그대로 질병분류학(nosology)이라는 분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특히 18-19세기에 동식물 분류 모델을 질병에도 적용하여 체계적으로 질병을 분류하고자 한 소위 분류의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분류의학은 거꾸로 식물분류학의 발달에도 공헌했는데 그것은 당시 의사들이 오늘날과 달리 약초 분류 연구도 병행하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린네가 이러한 약초 분류 연구를 시작으로 식물분류학을 집대성한 의사였다는 사실은 따라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초기의 분류의학은 임상 증상들 각각을 곧 질병으로 보았다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면 증상의 유형을 질병과 동일시하였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열(fever)은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양한 질병의 발병에 따른 인체의 반응 양상인 증상에 불과하지만, 분류의학 체계에서는 열 자체가 질병이며 이에 따라 초기 분류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열병을 분류해 나갔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해부병리학을 토대로 형성된 현대 의학은 증상에 더 이상 질병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증상은 현상일 뿐이며 본질은 어디까지나 질병인 셈이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각 질병마다 인체 내에 최대한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존재론적 실체의 지위마저 부여하고, 이를 가리켜 ‘병의 자리’라는 의미에서 병터(lesion)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분자생물학의 시대라 해서 바뀌지 않았다. 다만 기관(organ) 같은 거시적 자리에서 유전자 같은 미시적 자리로 병터의 위치가 이동했을 뿐이다.

이렇듯 현대 의학에서 질병 분류는 주로 인체의 해부학적 변화나 생화학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의 주요한 이론적 토대인 해부병리학적 질병관 밖에 위치한 임상의학 분야를 예로 들라면 정신의학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의학은 지금도 사실상 증상을 중심으로 한 예전 분류의학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신경과학과 생물정신의학의 맹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뇌와 신경계에 정신 및 정신질환의 자리를 구체적으로 제공할 만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까닭이다. 정신의학계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 곧 정신질환 분류 편람인 미국정신의학회의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체제가 해부병리학적 병터나 생화학적 메커니즘이 아닌 환자의 임상 증상과 행동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질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각각에 이름, 즉 병명을 붙이는 작업을 수행하는 질병분류학이라는 기본적인 의학 분야는 오늘날 일선 의사들이나 의학자들에게 사실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 의사나 해부병리학자 정도를 제외하면 오히려 관심 밖 영역이다. 의사들은 과거 분류의학 시대처럼 질병에 동식물과 같은 정교한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 나가는 작업에 거의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질병이란 동식물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현대 의학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저 진단 및 의료보험 청구에 사용되는 질병코드를 확인해야 할 때나 잠시 실무적 차원의 관심을 질병분류학에 보일 뿐이다. 그보다는 전 세계에서 사용 중인 질병코드와 분류의 준거가 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의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담당 부서, 질병과 사망 통계 업무를 담당하는 통계청이나 보건복지부 직원, 보험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병원의 의무기록사 등이 아마도 직업적 차원에서 더 관심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ICD 질병코드 및 병명의 지속적인 개정 작업과 이에 따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영역에서 연구와 치료의 대상인 질병은 어찌 되었든지 그 각각의 이름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심지어 이는 사회문화적 변화에 민감한 정신질환에서조차 마찬가지이다. 다름 아닌 학문적 약속 체계인 까닭이다. 본 연재의 주제인 ‘인플루엔자’ 또한 ICD 최신판인 ICD-10에서는 ‘제10장 호흡계통의 질환(J00-J99)’ 가운데 ‘인플루엔자’라는 병명 하에 J09에서 J11까지 세 가지로 코드화되어 있다. 이는 질병의 원인이 환자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이른바 본체론적 질병론(ontological theory of disease)과 현대 의학의 토대인 해부병리학적 질병관이 서로 결합된 결과이며, ‘인플루엔자’라는 이름과 상기 세 가지 코드로써 질병의 원인, 증상, 병터, 진단, 치료, 예후에 이르기까지 전부 의학적으로 예견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록 진단 확정 시라는 전제가 붙긴 하나, 적어도 인플루엔자처럼 원인체가 밝혀진 감염병의 세계에서는 지시어인 병명(이름)과 지시대상인 질병(표상) 상호 간의 기호학적 결합이 임상(경험)적으로든 의학(이론)적으로든 너무나 명료하여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근현대 서구의학의 역사 서술에서는, 당대의 통계학적 부실이라는 치명적인 변수가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사료상의 정확한 병명 확인 및 그 병명에 의거한 질병 현상 자체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역사 재구성 시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된다. 특히 질병사 연구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연구 대상인 특정 질병을 놓고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떠한 이름을 붙였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후속 연구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첫 단계에 해당한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된 뒤에야 비로소 당대 역학 데이터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병명을 혼동하게 되면 유병률이나 사망률 같은 기본적인 데이터가 흔들리게 될 것이고, 이는 그렇지 않아도 부정확한 통계적 사료 속에서 더더욱 부정확한 역사학적 해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꽤 장황해졌는데, 내가 지난 연재에 이어 이번에도 계속해서 인플루엔자의 이름을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천장화 일부

사진 설명: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천장화 일부. 에덴동산에서 사람(아담)이 짐승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39911172@N08/3715531606/in/photostream/

 


※ 주
1) ‘종’이란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개념이다.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을 때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이를 종으로 보아야 할지 종종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중세 식의 보편 논쟁에서 보자면 ‘종’이란 유명론보다는 (보편자) 실재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별 생물 개체들보다는 이를 포괄하는 상위의 보편적 실재로서 종을 상정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유명론의 입장에서 보면 ‘종’이란 보편적 실재가 아닌 그저 또 다른 개념상의 이름일 뿐이다. 가령 ‘호모 사피엔스’란 ‘개별 인간들’에 앞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그저 학문적인 분류에 따라 개별 인간들을 통칭하기 위해 설정한 개념상의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는 개인으로서 각 인간들만 존재할 따름이며,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경구를 빌리면 개별 실존이 보편 본질에 선행한다.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2005),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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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중 (인제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책상머리 지킴이 업(業)인 의사학자(醫史學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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