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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37] 과학기술인력 유치의 맹점
오피니언 김찬현 (2019-04-11 10:16)

'내 아이는 이공계로 키우고 싶지 않아.' 모 반도체 기업의 연구소에서 일할 무렵, 회식 자리에서 과장이나 차장 정도 되는 선배, 상사들에게 종종 듣던 이야기다. 엔지니어, 연구원으로서의 실력이나 자부심이 없는 분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소득 분포에서 상위를 차지하며, 이만한 일자리도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다음 세대에게 적극적으로 권할 정도로 좋다고 여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당신이 처한 노동환경과 보수체계가 학업에 투자한 기간과 실제로 가치를 창출한 기여에 걸맞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같은 노력과 실력이면 의료계나 법조계로 진출하는 편이 나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퇴사하는 젊은 연구원 중 그렇게 진로를 변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업 연구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우가 이 같을 진데, 산업계 전반 및 대학과 출연연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부정적인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는 공학 엔지니어링 분야의 일례를 들었지만, 과거의 조사 결과는 이러한 상대적 박탈과 불만을 느끼는 것이 기초과학까지 포함한 과학기술계 일반의 현상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대학 교수 등 소수의 포스트를 제외하고, 직업으로서의 과학기술자는 적어도 기회비용과 소득수준의 관점에서는 다른 전문직 대비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고등교육에서의 인재 육성에 대한 투자 분배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근원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가 매력적이지 않은데 중간 단계에만 정책적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세금을 들여 운영하는 과학(영재)고 출신이 의대를 간다고 비난하기 전에, 생애 초기 단계에서 과학영재를 발굴해 고급 인력으로 키운다는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 사람이 연구자로서 발돋움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하면, 청소년기부터 특정 분야에 전문화 혹은 매몰화된 (정의조차 불분명한) 영재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대학·대학원 이후다.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의사나 변호사보다 매력적인 직업이라면, 뛰어난 학생은 알아서 달려들 것이다. 그래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사회 구조가 교육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그 반대 경우보다 더 크다. 이에 거스르는 정책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다.

과기계에서 우수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한다면, 중등교육보다는 고등교육, 고등교육보다는 연구 현장에서의 유인을 강화하고 투자·지원 전략도 선회해야 한다. 가장 명쾌한 해법은 임금의 획기적인 상향이다.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누가 몰라서 못하는가,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 다른 직군과의 형평성, 사회 전반의 인식에 비춰볼 때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따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애 주기에 따른 투자·지원 전략의 조정이 필요하다. 전분야에 대한 적용은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인정받는 분야부터 연구자의 실질적인 기여에 걸맞은 처우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기업은 그 평가역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당장 두 이웃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봐도 과학기술자는 멋지고 영예롭게 인식되는 존재가 아닌데, 특히 한국처럼 소명의식이나 명예가 사회적으로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유인 기제는 자본이다.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연구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사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2030년을 향한 중장기 이공계 청년 연구인력 성장지원 방안(안)에서 제시된 비전이다. 해당 안의 주요내용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항목은 이공계 연구직업의 매력도 제고인데, 경제적 요건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원생의 안정적 생활비 지원체계 등을 통한 유입 촉진, 박사후연구원과 연구교수 대상 펠로우십 확대와 인건비 풀링제 등 성장 지원, 전임연구원 및 연구장비 전담인력 채용 확대 및 공공(연)과 중소기업의 일자리 확충이다.

전반적인 방향성에는 찬성하는 한편, 기저에 깔린 전제는 꼭 되짚어보고 싶다. 대학원생 규모의 유지를 위한 노력은 '유능한 젊은 인재'의 유입과 정확히 어떻게 관계하는가. 당초부터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게 설계된 일대다(교수 한 명과 여러 명의 대학원생) 연구실 시스템의 존속을 위한 임시적인 방편은 아닐까. 학령 인구의 감소와 별개로,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마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학력이 미래의 소득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생 수의 감소폭을 줄인다고 유능한 젊은 인재가 유입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국가가 전담할 수 있는 영역의 본질적인 한계를 인지하고, 민간과 책임을 분배하는 장기 전략을 세웠으면 한다. 국가는 산학연 네트워크의 촉매 및 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대학과 출연연 외의 영역에는 실질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과감한 제안을 하자면, 사학 지원을 삭감하여 개입의 범위를 압축하고, 국공립대학을 통합 및 확장하면서 공공연구 일자리의 질과 양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국내에서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에 대한 국제협력연구의 촉진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수를 조정하고 전임연구원(staff scientist)과 연구장비 전담인력(technician)을 확대함으로써 건강한 연구 환경을 꾀하는 일은, 이같은 기반 위에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민간에서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와 중복되는 영역이 있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전체 국가R&D의 효율적인 운영에 보탬이 되며, 결과적으로 더 적은 예산으로 바람직한 운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기업은 본디 직접 담당해야 할 직업교육의 책임을 국가와 대학에 묻기 보다는, 뛰어난 인재들이 찾아오고 떠나지 않게끔 교육과 보상의 체계를 보완함이 바람직하다. 유수의 국제적인 기업은 실무와 다소 거리가 있는 다양한 학문의 전공자도 일정 비율 채용한다. 인재의 경험과 잠재력을 실질적인 업무 능력으로 승화시킬 사내교육에 대한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1. 과학기술자의 연구환경과 직무만족에 대한 설문조사 분석, 이은경 외, 2002.
2. 고급과학기술인력의 보상포트폴리오 분석과 시스템 개선, 민철구 외, 2009.
3.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의 경력이탈 현황 분석,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홍성민, 2015.
4. 2030년을 향한 중장기 이공계 청년 연구인력 성장지원 방안(안),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2019.
5. [과학협주곡 2-6] 과학고와 의대, 한빈, 2018.
6. [과학협주곡-2] 미국의 의생명과학은 어떻게 망가졌는가, 남궁석, 2017.
 

 

김찬현

김찬현(과학 활동가, 통번역사)
일본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진행된 반수소(反水素) 원자 합성 연구에 참여해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반도체(半導體) 기업에서 소자 연구원으로 근무해 개발에서 양산으로 이어지는 산업 현장을 경험했다. 현재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과학기술정책 및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두고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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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회원작성글 SnakeDoctor  (2019-04-11 15:36)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보상이 가장 확실한 당근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높은 수입이 당근이 될 수도 있고 안정적으로 꾸준히 나오는 수입(예) 공무원)이 당근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제는 돈 때문에 어떤 진로를 택했다는 것을 비난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이공계 인재들이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는 이유야 다들 아실테니 그에 맞는 대책이 나와야겠지요.
사회에서 그정도 비용을 투자할 생각도 없다면 우수한 인재를 기대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회원작성글 울리는  (2019-04-12 01:5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회원작성글 minpark  (2019-04-12 06:19)
아직 한국 생명공학 회사들의 수준이 낮고 연봉이 낮으니 우수한 인재가 선택을 안하려고 하는것이지요. 삼전 같은 회사가 등장하면, 이쪽도 달라집니다. 시장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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