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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오피니언 곽민준 (2019-01-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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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던 중이었다.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Not my mother, our mother!”라는 대사를 했다. ‘my mother’와 ‘our mother’ 모두 한국어로는 ‘우리 엄마’로 해석된다. 따라서 위의 문장을 그대로 직역하면 “우리 엄마가 아니라 우리의 엄마야!”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이 된다. 우리나라만의 특색있는 ‘우리’라는 표현이 때로는 참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 중심 국가다. 당장 ‘우리’ 나라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해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것을 오랫동안 미덕으로 여겨왔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는 공동체 내 역할 수행 능력을 통해 평가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본인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연재에 걸쳐 우리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두 행동, 혐오와 속임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혐오는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이 상대적인 우위에 서기 위한 행동이며, 속임수, 특히 허세는 내가 실제로 갖춘 능력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 것처럼 상대가 느끼도록 하는 행동이다. 이 두 행동은 모두 자신의 사회적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사회적 인정과 지위에 목매는 걸까? 이놈의 국가는 나에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에게 인정받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걸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나’와 ‘우리’의 개념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 그 답을 차근차근 찾아가 보자.

 아주 오래전 모든 생물은 하나의 세포로만 구성된 형태였다. 동물과 같은 다세포생물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다세포생물의 출현이 가능했던 것은 단세포생물들끼리 서로 가까이에 뭉치는 것이 그들의 생존에 유리한 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포식자의 공격에 방어하기 수월하다. 뭉쳐있는 공간에 먹이를 보관하면 세포 내의 공간을 소비하지 않고도 쉽게 영양분을 저장할 수 있다. 게다가 가까이 있는 생물끼리 편하게 짝짓기도 가능하다. 이처럼 단체생활은 다양한 장점이 있으므로 많은 단세포생물은 서로 모여 ‘군체’를 이루며 살았다. 마치 선사시대의 선조들이 부족 단위로 모여 생활했던 것처럼 말이다. 군체 생활을 하던 중 돌연변이의 발생으로 단세포생물들은 서로 들러붙기 시작했고 눈송이 형태의 구조를 이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눈송이 구조는 놀랍게도 일부 세포들의 자살을 통해 진화했고, 마침내 제대로 된 다세포생물의 모습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원래는 서로 다른 생물이었던 세포들이 서로 뭉치고 일부의 희생을 통해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며 하나의 생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생물이 모여있던 ‘우리’가 진화를 통해 ‘나’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관점에서는 개체를 ‘나’가 아닌 여러 작은 생명 단위가 모인 ‘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편 리처드 도킨스는 대표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개체를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표현했다. 더불어 진화와 모든 생명현상은 자기 복제자의 일종인 유전자의 생존과 복제를 위한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진화와 생명현상의 주체는 유전자다. ‘나’는 곧 유전자인 셈이며, 개체는 여러 유전자가 목표를 위해 만들어낸 운반자에 불과하다. 심지어 도킨스는 이 충격적인 주장에서 나아가 자기 복제자의 일종인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스스로 속한 개체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까지도 변화시킨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비버가 생존에 유리하도록 댐을 짓고, 기생충이 증식을 위해 숙주의 행동을 조작하는 현상 등을 그 예시로 제시했다. 도킨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개념이 더욱 모호해지며,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하나의 개체는 ‘나’보다 ‘우리’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생물학적으로 ‘나’는 매우 불분명한 개념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흔히들 ‘나’라고 여기는 개체가 관점에 따라서는 ‘우리’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반대로 개체가 ‘나’나 ‘우리’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일부로 생각되기도 한다. 몇몇 학자들은 개미와 꿀벌 등 사회적 곤충의 군집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한다고 이야기하며, 이를 ‘초유기체(Superorganism)’라고 부른다. 휠도블러와 윌슨은 아예 『초유기체』라는 책을 지었는데, 이 책에서 그들은 초유기체 속 개체는 우리 몸의 세포에 해당하며, 그들의 사회적 계층은 기관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각각의 개체는 초유기체라는 또 다른 나의 일부다. 흥미로운 점은 개체가 또 다른 나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의하거나 표현할 방법에 어떤 것들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설명한다. 남자라거나 회사원이라거나 부산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나’ 그 자체로 정의하기보다 사회의 일부로 인식함을 잘 보여준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왜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여길까? 그리고 왜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걸까? 단세포생물이 모인 눈송이 구조가 결국에는 하나의 다세포생물이 되었듯이 때로는 ‘우리’가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있다. 초유기체와 인간의 사회가 거시적으로는 ‘또 다른 나’라고 정의될 수 있는 이유다. 많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눈송이 속 단세포생물처럼 자신을 사회라는 ‘또 다른 나’의 일부분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개성이 아닌 사회적 역할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인생의 일부를 투자하는 것은 단세포생물이 자살하여 다세포생물로의 진화를 도운 것과 비슷한 희생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을 언제나 사회의 일부분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개체로서의 나의 이익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혐오나 속임수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 애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 내에서 본인의 능력과 지위를 인정받으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이익 중 직접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이 더 커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경제적 이익을 포함한 모든 혜택을 전부 누리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거의 모든 사회적 현상은 자신을 ‘나’로 여기는 인식과 사회라는 ‘또 다른 나’의 일부로 여기는 인식 사이 균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협력과 이타적 행동은 물론, 혐오와 속임수처럼 나쁜 행동들 역시 두 인식의 공존으로 인해 등장한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혐오와 속임수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본인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다양하고, 그중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가능한 것들이 얼마든지 많다. 물론 혐오와 속임수가 가장 편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생물학적인 본능이 시키는 대로밖에 할 수 없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본능과 운명을 따르는 존재 이상의 개성 있고 특색있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아실현과 공동체 기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도킨스의 말대로 인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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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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