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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21] 논문이라는 화폐
오피니언 김우재 (2018-12-04 11:12)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은 논문에선 '학술논문'을 일종의 화폐로 간주하고 있었다. 20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한 연구중심대학은, 학자를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학술논문은 그런 평가기준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톰슨 사이언티픽이라는 회사 소유의 과학인용색인 (SCI)은, 어느새 학자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이제 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것만이 자신의 화폐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됐다. 이런 학계의 공공연한 운영방식에 이의를 제기할 연구자는 없다.

논문이 화폐라면, 그 논문으로 살 수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있고, 또한 논문의 가치는 그 화폐가 발행된 기관의 투자가치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즉, 학계를 무슨 수도원이나 상아탑으로 비유하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학계야말로 논문을 화폐로 거래하는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비유를 바꾸면,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세계 학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전 약탈적 학술지 와셋, 오믹스 등에 참가한 학자들의 명단이 뉴스타파에 대거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 학자 집단의 비윤리적 행태가 드러난 일이 있다. 연구재단조차 이런 학회의 존재여부를 파악하지 못했고, 서류만 제출하면 학회 참가나 학술지를 질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관료주의의 과잉이 이런 사태를 불렀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연구자를 약탁적 학술지와 학술대회로 유인한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잘못된 관료주의적 연구평가 기준과 만났기 때문이고, 쉽게 말하자면 연구자들이 모조리 자신의 논문이 지닌 가치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의 성과지표는 논문 및 특허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논문은 숫자만이 아니라 SCI에서 제공하는 평가지수인 임팩트 팩터 (IF)를 고려해 이루어진다. IF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술지를 선별하는 기준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미 선진국에선 IF만으로 연구자를 선별하던 관습에 의문을 표하는 쪽으로 여론이 움직이고 있다. IF가 높은 학술지에서 더 많은 철회 논문이 나오기도 하고, IF만으로 학자를 판단하는 학문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이건 마치 비트코인 열풍이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보다는 투기열풍이 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IF가 높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가치는, 그 학술지의 가치와는 별개로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연구자들은 IF를 일종의 절대적 평가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그게 가장 편하게 빠른 시간에 학문을 평가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세계 상위 1% 연구자 중 한국인 몇 십명이 들어갔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다. 상위 1% 연구자라는 개념은 마치 세계 1% 부자를 순위별로 올려 잡지를 판매하는 경제 잡지를 닮았다. 논문이 일종의 연구자 집단의 화폐이듯, 노벨상과 최고의 연구자만 주목하는 세태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세태를 닮았다. 학계는 이미 논문을 화폐로 사용하는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인 셈이다. 아주대의 감동근 교수가 이번에 1% 연구자로 지정된 수학강사의 논문이 IF 뻥튀기로 유명한 학술지에 실렸음을 지적하자,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감 교수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고, 수학강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심지어 수학학회장은 해당 수학강사를 옹호하는 글을 써 감동근 교수를 비난했다1 .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이 사태가 보여주는 한국 학계의 현실이 참담하다. 이미 수학계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라비 아가왈 (Ravi Agarwal)이 만든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한 것도 모자라서, 연구자들끼리 일종의 야합을 통해 자신의 논문 인용 지수를 끌어올린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전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학회장부터 연구자까지, 이런 비도덕적인 학술출판을 일종의 암묵적인 관행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이런 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제어할 어떤 제도적/문화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더 큰 문제다. 이미 대학원에서 학생에게 건강한 학문연구의 방법을 가르쳐야 할 교수와 연구자들이, IF를 꼼수로 채우고 심지어 그 꼼수로 유명해질 생각을 하는 시대에, 도대체 학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학문이 사회의 경제체제를 베껴 스스로 만들어낸 우스꽝스런 경제체제 속에서 침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이미 감동근 교수가 지적했듯이, 논문의 평가지표에 미쳐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국내 학회는 한 둘이 아니다. 한국 대학 교수들이 만든 가짜 학술지와 학회도 한 둘이 아니다. 학계는 이미 공황 상태다.

이런 변화는 비가역적일지 모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볼 수는 있다. 학계의 구조적 변화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거대 학술지 회사나, 대학의 기계적인 정량적 지표,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마구 남발되는 연구비의 문제를 모두 바꿔야 하는 어려운 길이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분명히 사회 속에서 그 역할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대학원은 그런 변화에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연구자를 배출하는 창구인 대학과 대학원이 축소되면서, 학술지 시장에도 곧 타격이 오게 될 것이다. 정부 연구비는 더 이상 크게 늘지 못할 것이고, 기초연구비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는 곧 다가올 미래이고,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대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딥러닝, 강화학습, 인공지능, 블록체인,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지금은 기득권으로 득의양양한 대학과 학술지들이, 마치 우버와 에어비앤비에 밀려 사라지는 택시와 호텔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난 수백년동안, 그들은 충분히 잘 먹고 잘 살았다. 이젠 새로운 모습으로 학계를 변화시킬 때가 됐다.


※주석  
1. 감동근 교수의 글은 여기서 모두 볼 수 있다. “세계 1% 연구자라고?” 
https://brunch.co.kr/@dkam/11?fbclid=IwAR1w7biXRGS_81qE6EVcQt6f_z1OvyDhMtLZhJDKbaLJFURX9PfpLYFnKC8

김우재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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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5
회원작성글 Rivas  (2018-12-04 11:55)
그래서 필자는 "2천만원"짜리 논문 써주는 사설 학원 차리겠다면서요?
https://www.facebook.com/nassol99/videos/1988648417879446/
회원작성글 산마루  (2018-12-04 16:32)
윗분이 냉소적으로 반응하시는 것처럼, 김우재 박사의 말들이 더 이상 씨가 먹하지 않기는 하지만(최근 학계를 떠나겠다는 본인 스스로의 발표로) 그리고 맞지 않는 터무니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이 글은 대한민국 학계가 정말 아프게 들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Impact factor 하루 빨리 내다 버리는게 참된 대한민국 과학 발전의 길이라는데 동의합니다.
회원작성글 RiderX  (2018-12-04 16:51)
학자마다 본인이 이끌어가고 있는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을 하지요. 대학교수자리와 세금에서부터 나오는 연구비라는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요? 가뜩이나 학연, 정치인과의 연줄이 연구비 분배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뭘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할까요? 아프지만, IF를 대체할 수단이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요.
회원작성글 minpark  (2018-12-04 17:11)
문제 제기는 알겠는데, 김우재가 캐나다에서 한국 학계의 현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게 우습다는거요. 캐나다에서 본인이 받은 학생들과 논문을 썼는지, 아니면 멘토를 잘 해줬는지? 본인 얼굴은 못보면서, 사회 비판으로 관심 받고 책팔고 하는게 그게 장사치지, "학자"인가 의심스럽다.
회원작성글 구름재  (2018-12-05 02:46)
RiderX님, 솔직히 우리는 각자 분야에서 어느 저널이 좋은지 어떤 저널이 엉터리인지 잘 알고 있지요.
impact factor로 심사를 해야 한다면 적어도 엉터리저널(impact만 높은)을 공인기관에서 매년 걸러내는 노력이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불과 얼마전 퇴출된 Oncotarget에 모두들 얼마나 열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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