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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생태에세이] 양다리 걸치는 '분할 산란', 생물의 플랜B 전략
오피니언 이탈 (2018-11-01 09:42)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작가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작품은 욕망과 간절한 사랑이 결국 주인공을 나무로 화신(化身)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식물들 각각에게도 사연이 있는 것이다. 

<뉴 피톨로지스트> 최신호에는 겨자과 식물인 에티오네마(Aethionema arabicum. 분홍리스본)가 종자 및 과일 분산 전략에 특이함이 있다고 소개했다. 종자나 열매의 분산은 식물 생활사에서 때론 식물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단계다. 식물들한테 은밀한 사생활이 있는 것일까? 사실상 식물들은 식물 종 또는 개체군 전체를 운반하는 잠재력이 있다. 분산은 때론 지대한 영향을 끼쳐 생태적이고 진화적인 결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식물 종은 환경에 적합한 단일 종의 열매와 종자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에티오네마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열매를 만든다. 에티오네마는 쪼개져 벌어지는 큰 열매와 닫힌 채로 있는 작은 열매를 생산한다. 큰 열매 안에는 점액으로 둘러싸인 종자가 있고 작은 열매 안에는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종자 하나가 들어 있다. 에티오네마는 크기가 작고, 이배체이며, 일년생이며, 초본 종으로서 현재 게놈 서열이 알려져 있다. 에티오네마 같은 일년생 식물들은 오직 종자의 재생으로만 새로운 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든 생물들은 생존을 위해 언제나 두 가지 전략을 취하는 게 아닐까. 에티오네마의 경우 열매와 종자 각각에서 분산 전략을 취했다
모든 생물들은 생존을 위해 언제나 두 가지 전략을 취하는 게 아닐까. 에티오네마의 경우 열매와 종자 각각에서 분산 전략을 취했다. 사진 = https://www.newphytologist.org

극한 환경에 맞서는 에티오네마의 두 전략

주변에 흔한 데이지꽃은 이런 놀라온 현상의 전형적인 예이다. 꽃머리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설상화(舌狀花)라고 불리는 기다란 모양의 고리는 많은 반면, 안쪽 중심에는 대롱꽃이라고 불리는 중심화(中心花)가 촘촘히 박혀 있다. 이 두 종류의 꽃 부분들은 다른 차원의 형태학적 형질, 분산과 휴지 전략, 발아 형태를 갖고 있다. 에티오네마는 예상하기 힘든 거친 환경에서 성장과 번식의 분할 전략을 보여준다. 

산란 시기 에티오네마의 큰 열매는 끈적끈적한 종자를 방출한다. 이때 종자는 다른 곳으로 분산되지 못하고 기층에 달라붙는다. 반면 작은 열매는 바람과 물을 따라 종자를 먼 범위로 이동시켜 생존에 적합한 또 다른 환경과 맞닥뜨리게 한다. 한 식물에서 두 가지 분산 메커니즘이 작용한 것이다. 왜 에티오네마는 종자를 토양에 붙여 먼 분산을 막는 전략과 함께 멀리 떠나보내는 전략을 동시에 쓰는 것일까. 에티오네마가 사용한 이 방법은 분할 산란(bet-hedging)이다.  

분할 산란은 표현형 다양성 정도에 대한 이유를 제공한다. 에티오네마의 분산은 융기하는 아나톨리아 고원과 이란 고원, 산맥들의 형성, 건조해지는 여름 등의 사건 속에서 일어난다. 극단적 지역에서 생존하기 위해 에티오네마가 찾은 방법이 이형(heteromorphic) 산포체(열매와 종자)들의 맞춤형 분할 산란인 것이다. 종자와 열매에 내재된 다양성은 성공적인 분산과 적절한 발아 시간을 위해 전략을 추구한 결과다. 

건조한 지중해와 사막 서식지 또는 스트레스가 많거나 자주 교란되는 환경에서 가장 일반적인 식물들도 이형 산포체가 있는 일년생이다. 중국 북서부 추운 사막의 거의 모든 이형 종은 일년생이다. 이들은 가혹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서식지를 벗어나려고 분산뿐 아니라 토양, 강, 호수 퇴적물 등에 종자를 저장해 두고 발아를 지연시킨다. 이 덕분인지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은 세계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 되었다.  
   
에티오네마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산 전략을 취했다. 식물들도 매우 현명한 방법으로 살아간다
에티오네마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산 전략을 취했다. 식물들도 매우 현명한 방법으로 살아간다. 

극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내재된 변화들

시공간 다양성으로 번식과 생활사 전략을 꾀하는 생물은 식물뿐이 아니다. 곤충 및 갑각류에서도 분할 산란 전략이 나타난다. 꿀벌은 개체군을 확장하기 위해 이주하거나 새로 침입한 지역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개체들을 다양하게 만든다. 꿀벌은 꿀벌 과(Apidae) 꿀벌 속(Apis)으로 아홉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에는 서양꿀벌 한 종만이 서식할 정도로 종 다양성이 매우 적으며,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벌집 하나에 알을 낳을 수 있는 암컷은 한 마리뿐이다. 이에 대해 찰스 다윈은 “꿀벌이라는 생물은 아주 당혹스럽다.”는 말을 남기며 자연 선택만으로 꿀벌을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꿀벌의 유전자는 전적으로 여왕벌이 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만약 여왕벌이 이동을 하게 될 경우 군집 전체가 여왕벌을 따라 나서야 한다. 그런데 재래꿀벌은 csd라는 특이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유전자지만 높은 다양성을 만들 수 있는 대립유전자다. 새로 이주한 지역에서 꿀벌들은 유전자 빈도를 높이기 위해 유전자에 잠복하고 있던, 즉 열성 형질로 숨어 있는 유전자를 불러낸다. 이로써 꿀벌은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번식 축제를 연다.  

미국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진화는 진보라기보다는 적응이고 다양성의 증가”라고 말했다. 꿀벌과 에티오네마의 전략은 형제자매 간의 경쟁, 과밀, 동족 번식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면서 다양한 환경에 어울리려는 전략이다. 번식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궁극적이며 최종적 목표이다. 이는 자연의 요구에 맞춰 선택되고 진화한다. 어떤 경우 그 선택이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 되지만, 예측 불가능한 환경으로 인해 어느 순간 유리한 조건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자연 선택 법칙은 “환경에 적합한 변이 체는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 체는 도태된다.”이다. 그런데 도태가 아닌 ‘휴지기 상태’로 있다가 다시금 과거와 비슷한 환경에서 그에 걸맞은 독특한 생활사를 보이는 생물들이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자연은 모든 내재된 것에 평등하다. 흐르는 시간과 변화 속에서 생물들은 언젠가를 위해 과거 흔적을 몸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나기를 어떻게 알고 이 시기만 되면 나타나는 포식자 새나 연어가 찾아오는 시기를 어떻게 맞추는지 그맘때면 강으로 찾아드는 곰들.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생물들의 행동과 모습은 아마 이들에 내재한 미세 동력이 휴지기 상태에서 적합한 환경을 맞아 선택된 움직임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전략가가 되다

환경은 규칙적인 빛과 기온 주기에서부터 양분과 pH 수준의 불규칙한 변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온이나 습도나 바람은 절대 어제와 같지 않다. 불규칙한 환경 탓에 많은 대부분의 균 군집은 잠재적 환경 변동에 반해 그들의 건재를 높이려는 분할 산란 보호 메커니즘을 지녀야 했다. 대장균(Escherichia coli) 군집의 경우 글루코스와 락토오스 혼합물 상에서 평소에는 훨씬 소화하기 쉽고 자신들의 성장률을 높이는 글루코스를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대장균 군집은 갑작스런 글루코스 부족 상황을 대비한다. 즉 락토오스 오페론를 활성화하는, 적은 수의 개체들을 항상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적은 수의 개체들로 마치 위협적인 환경에 장기간 대응해 감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생존의 신비 속에는 항상 놀라운 전략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진딧물 종이 겨울이 오기 전 유성생식으로 알을 낳다가 봄이 되면 수컷과의 수정 없이 새끼를 낳는 무성생식을 하는 이유나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멸종위기 도마뱀이 허리케인을 겪은 뒤 불과 6주 만에 태풍에 맞서기 좋게 평균 발바닥 면적이 넓어지고 앞다리 뼈가 길어지는, 마치 표현형의 일시적 발현과 같은 현상을 보이는 이유 등은 기존의 자연 선택 이론으로 설명이 어려울 정도다. 

세균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물 종은 새로운 영토로 확장하고 침입하며 진화 역사와 역동성을 만든다. 생태계는 야생 생물들에게 항상 혼란 자체다. 때문에 종들은 의태, 성 선택, 공생, 위장, 경쟁, 이주, 생식방법 뿐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 개체 표현형을 다양화함으로 자신들의 멸종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천재가 많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 빈번한 환경 변동이 제한된 곳에서는 환경 변화의 본질에 상관없이 분할 산란이 존재할 기회는 없다. 일시적으로 변동하는 환경보다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변동하는 환경에서 번식과 관련한 선택 능력은 특히 발휘된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1. https://nph.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11/nph.15490
2. https://m.phys.org/news/2018-10-ways-survive-terrain.html
3. https://www.biorxiv.org/content/early/2018/09/27/429506
4. https://arxiv.org/abs/1702.00094
5. https://www.ncbi.nlm.nih.gov/pubmed/29676786
6. <EBS> '다큐프라임 : 생명의 전략 번식'

  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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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교수신문> 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현재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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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회원작성글 최초여노  (2018-11-01 09:5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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