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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경쟁사회에서 다양성의 사회로
생명과학 곽민준 (2018-10-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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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루브르 박물관 최고의 스타,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 최고의 스타 ‘모나리자’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기대를 안고 모나리자 방에 들어선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놀랍게도 기대했던 다 빈치의 걸작이 아닌, 그 맞은편에 전시된 ‘가나의 결혼식’이란 작품이었다. 가로길이가 9m를 훌쩍 넘기는 이 작품은 명성과는 반대로 너무 작은 크기였던 맞은편의 모나리자와 비교돼서 그런지 특히 더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나리자가 별로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모나리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 공간의 모든 공기와 스포트라이트가 순식간에 조그만 그림 하나에 집중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림 속 신비로운 웃음의 여성이 ‘내가 주인공이야!’라고 외치는 듯했다. 왜 그렇게까지 모나리자가 유명하고 사랑받는 그림인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와 가장 큰 그림인 ‘가나의 결혼식’은 서로를 마주 보도록 큐레이팅 되어있다. 박물관에 방문한 지난겨울, 이 두 작품의 전시를 직접 마주한 필자는 ‘모나리자’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가나의 결혼식’의 웅장함, 두 매력 모두에 완전히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모나리자’를 실제로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크기도 작을뿐더러 유리 벽 안에 숨겨져 있어 그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는 필자도 조금 안타깝긴 했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고도 명화 속의 신비스럽고 품격있는 분위기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맞은편의 거대한 ‘가나의 결혼식’을 볼 때는 시선이 크게 분산되었으나, 고개를 돌려 ‘모나리자’와 마주한 순간, 작은 초상화에만 정신을 온전히 집중시킬 수 있어 그 알 수 없는 매력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모나리자’를 보다 ‘가나의 결혼식’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는 그 거대함이 마주 보고 있는 조그마한 명화와 명확히 대조됨으로써 그림의 웅장한 멋짐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즉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과 가장 큰 그림은 같은 공간에 함께 공존하며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프랑스에 방문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루브르의 모나리자 방에는 박물관 내 유명세 부문 1등 작품과 박물관 내 크기 부문 1등 작품이 모두 각자의 장점을 뽐내며 공존하고 있었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전문성이 인정받는 사회, 정답 인생 없이 모두가 1등이 되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필자에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모나리자
[그림 2] 루브르 박물관 내 유명세 부문 1등 그림 ‘모나리자’와 
크기 부문 1등 그림 ‘가나의 결혼식’이 공존하는 루브르 최고의 인기 공간

 사실 우리 사회에서 모나리자 방처럼 1등이 공존하는 상황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명문대와 대기업이라는 정해진 정답,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획일화된 방식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1등이 되는 이런 신기한 모습이 사실 생태계에서는 절대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언제나 1등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생명은 힘든 진화의 경쟁을 이겨내고 각자의 공간에서 1등이자 지배자가 된 진화의 승리자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공간에서 1등인 생태계의 동물들
[그림 3] 모두가 자신의 공간에서 1등인 생태계의 동물들

 생태계가 1등이 공존하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전에, 바로 지난 연재에서 필자가 설명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잠시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자. "역사를 바꾼 과학자들, 다윈 vs 아인슈타인"이라는 글에서 필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하는 핵심이 시간과 공간의 통합이라고 설명했다1). 진화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는 같은 시간대에 공존하는 여러 생물 종을 서로 다른 시간대에 배열하는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소개하며, 다윈은 생명의 진화를 공간적 분기를 중심으로 해석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쉽게 말해 현존하는 여러 생물 종을 ‘서로 다른 시간에 등장한 생물들’이라고 본 관점의 문제와 ‘같은 시간(현재)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들’이라고 생각한 다윈의 기막힌 설명을 비교하여 소개한 글이었다.

 여기서 지난 연재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머지는 다 이해 못 하더라도, 적어도 현존하는 종들을 ‘현재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들’로 생각한 다윈의 견해는 기억해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특히 ‘공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줬으면 한다. 이미 예리한 독자들은 “우리 집 개와 나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들인데?” 와 비슷한 궁금증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 서로 다른 종들이 항상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 궁금증은 ‘공간’의 개념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여 발생한 오해다. 아니면 필자가 단어선택을 잘못한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정확한 생태학적 어휘로 표현하자면, 서로 다른 종들은 ‘서로 다른 niche에서 살아가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niche(“니쉬”라고 읽는다)란 단어는 생명의 ‘생태학적 지위’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리고 niche의 측면에서 생명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은 생명의 생활 범위를 단순히 공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Niche의 관점에서는 생명의 생활환경을 정의할 때, 생물학적, 물리학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하기 때문이다2)

 쉽게 말하자면 niche는 생명을 둘러싼 생물학적, 물리학적 환경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식 영역의 범위와 고도는 물론, 먹이와 생활주기, 사회성까지도 niche에 해당한다. 따라서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이 생명의 niche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접 돈을 벌어 음식을 사 먹는 인간과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애완견의 niche가 구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생활양식에서 적어도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는 생태계 속 모든 종의 niche는 모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앞에서 모든 생명은 각자의 공간(정확히는 niche)을 지배하는 1등이자 진화의 승리자라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같은 나무에 살지만, niche는 서로 다른 새들
[그림 4] 같은 나무에 살지만, niche는 서로 다른 새들 (출처: BiologyForums)

 아직 와 닿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척추동물의 진화 과정을 예시로 들어 종의 niche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모든 생명을 왜 각자가 생활하는 niche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진화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한 척추동물인 연골어류들은 매우 깊은 바닷속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류의 서식 범위는 얕은 물가로까지 퍼져왔고, 양서류에 이르러서는 물과 뭍을 오가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뭍에서만 생활할 수 있는 동물들마저 등장했고, 뒤이어 하늘을 나는 새까지 나타났다. 한편, 포유류들은 몸통을 지면에서 떼고 네 발만 땅에 붙인 채 뛰어다니는 사족보행을 시작했으며, 특이한 어떤 유인원은 심지어 두 앞발마저 지면에서 떨어트렸다. 중력을 거스르고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척추를 곧게 세운 직립보행 동물마저 등장한 것이다.

 넓은 관점에서 이 모든 진화 과정은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바로 생물들의 생활환경이 깊은 바닷속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나아가왔다는 것이다. 물론 척추동물의 모든 진화가 하늘 쪽으로 나아가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뤄진 과정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지금의 진화단계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몇몇 굵직한 생물학적 변화들이 동물들의 생활환경이 해발고도가 높은 곳으로 향하도록 일어난 사건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직립보행을 통해 niche의 차별화에 성공한 인류의 진화
[그림 5] 직립보행을 통해 niche의 차별화에 성공한 인류의 진화 

 이러한 진화 과정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가장 핵심은 아마 niche의 차별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깊은 바닷속의 고대 생물들은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 먹이, 서식공간 등의 자원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때 몇몇 생물들이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정착했을 것이고, 그들은 별다른 경쟁 없이 원하는 자원을 쟁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척추동물들은 아직 확실한 주인이 없는 공간 또는 niche를 찾고 그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의 진화는 사실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닌 비어있는 niche를 향한 변화였던 셈이다.

 따라서 필자는 종의 niche를 차별화, 다양화하는 과정이 진화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돌연변이 등의 방식으로 환경에 가장 적합한 표현형을 보이게끔 적응하는 것만을 진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적자생존만이 진화 전부가 아니다. 경쟁을 피해 자신이 최적화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 역시 진화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niche를 차별화하는 이 과정을 거쳐 살아남는 데 성공한 모든 종은 자신만의 고유한 niche를 소유하게 된다. 모든 생물이 적어도 자신의 niche에서만큼은 최고이자 지배자인 이유다.

 하나의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대신 개성 있는 맞춤 전략으로 niche를 차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동물의 번식 전략에서도 배울 수 있다. 쇠똥구리의 수컷 중 일부는 뿔을 가지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 뿔의 유무는 신체 크기로 결정되는데, 몸이 5mm 이상인 수컷들은 대부분 긴 뿔을 가지지만, 5mm가 되지 않는 수컷들은 아예 뿔 없이 살아간다고 한다(그림 6). 재미있는 점은 두 형태의 수컷의 번식 전략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쇠똥구리 신체 크기와 뿔 길이 간 상관관계
[그림 6] 쇠똥구리 신체 크기와 뿔 길이 간 상관관계3)

 몸집이 크고 뿔이 있는 쇠똥구리는 정석적으로 결투를 통해 암컷을 차지한다. 그러나 왜소한 데다 뿔까지 없는 수컷들은 싸워봤자 질 게 뻔하다. 그래서 이들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조금 야비한 수를 통해 짝짓기를 시도한다. 힘으로 암컷을 차지한 수컷들은 땅굴 속에서 알을 낳는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 굴의 입구를 지킨다. 이때 덩치 작은 수컷들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입구를 파 암컷의 땅굴과 연결한 후 몰래 짝짓기를 시도한다. 질 싸움은 포기한 채 자신만의 전략으로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3). 

 만약 덩치 작은 쇠똥구리들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뿔을 이용한 결투로 성내 경쟁에서 승리하려 했다면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대실패였을 거다. 그러나 결투를 통한 성 선택이라는 일반적인 경쟁이 아닌 자신에게 적합한 새로운 전략을 통한 승부를 위해 이들은 과감히 뿔까지 포기한다. 그리고 차별화된 맞춤 전략으로 결국 생존에 성공했다. 개인의 특성과 장단점은 무시한 채 어릴 때부터 가장 일반적인 방식인 국영수 공부만을 강조하고 정답 인생을 살도록 강요하는 우리 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필자는 공부가 하기 싫은 이들, 공부 길이 내 길이 아니다 싶은 학생들에게 뿔을 포기한 쇠똥구리가 되어보기를 추천한다. 학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숫자는 분명 제한적이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음치인 사람이 있듯이 아무리 공부해도 명문대에 가기 힘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예 방향을 틀어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자는 얘기다. 사회가 정한 정답 인생, 자연에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모범답안에 눈길 주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하고 투자하는 것이 바른 판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 쇠똥구리처럼 뿔을 포기할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는 게 먼저다. 비어있는 niche가 시궁창이라면 아무리 경쟁이 없다 해도 누가 거기서 살고 싶어 하겠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niche가 매우 제한적인 사회다. 새로운 전략, 기존의 공간을 벗어나 경쟁 없는 곳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진정 직업에 귀천 없고 대신 niche는 풍부한 사회 말이다. 

 생태계에서는 모든 종이 서로 다른 niche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우리 인간도 이렇게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몇 안 되는 좋은 niche를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지금의 사회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쓸데없는 경쟁도 없어지고, 경쟁에 패배해 좌절하는 자들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 없이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인 사회, 정답 인생 없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인 이유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경쟁 없는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도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다들 무사하기를 기도해본다.

[참조]
1) BRIC Bio 통신원,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역사를 바꾼 과학자들, 다윈 vs 아인슈타인'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98093&Page=1
2) Pocheville, Arnaud. "The Ecological niche: History and Recent Controversies", Handbook of Evolutionary Thinking in the Science(2015).
3) Moczek, Emlen. "Male horn dimorphism in the scarab beetle, Onthophagus taurus: do alternative reproductive tactics favour alternative phenotypes?", Anim Behav(2000).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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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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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회원작성글 Anoct  (2018-10-12 08:34)
정독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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