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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자연을 표절하라!
생명과학 곽민준 (2018-09-11 09:18)
강한 파도에도 꿈쩍 않고 바위에 들러붙어있는 홍합
[그림 1] 강한 파도에도 꿈쩍 않고 바위에 들러붙어있는 홍합

 “오늘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한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해 다 같이 술집에 모였다. 안주로 나온 탕의 홍합을 떼어먹던 오늘의 주인공은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홍합의 살과 껍질마저 잘 분리되지 않아 많이 화가 났는지 혼자 씩씩대며 홍합껍질을 집어던졌다. 친구의 상태로 보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

 빨간 조개라는 뜻을 가진 홍합은 그 감칠맛 덕분에 육수의 재료로 흔히 이용되는 대표적인 해산물이다.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심지어 가격도 다른 해산물들에 비해 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이 동물은 다른 그 어떤 생물보다도 강력한 힘을 하나 숨기고 있는 대단한 종이다.

 대체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조개가 무슨 힘을 숨기고 있겠냐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 번 여름에 해수욕장을 방문해 파도타기를 즐겼던 본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깊은 바다에서 발생해 육지에 다다라 매우 약해진 파도에도, 2m에 달하는 우리 사람들은 조금 과장을 보태 추풍낙엽처럼 날아간다. 그러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홍합은 빠르게 흐르는 바닷물의 강한 유속을 이겨내며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 홍합이 가진 그 뛰어난 능력은 바로 접착력인 것이다.

 바다 속 파도를 견뎌내며 바위에 꼭 달라붙어있는 홍합의 접착력은 지구상의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 강력한 힘을 지켜보던 생물학자들은 이토록 놀라운 홍합의 접착력을 천연 접착제 개발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곳곳에서 이 아이디어를 이용한 기술 개발 시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합 접착제가 학계에서 이렇게 큰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기술이 기존 접착제들의 단점을 보완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풀, 테이프 등에 이용되는 화학 접착제는 대부분 물에 들어가면 접착력이 매우 떨어져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따라서 물속에서도 바위에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 홍합의 힘을 이용한 천연접착제는 기존의 접착제들과 비교해 매우 큰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합을 직접적으로 채취해 접착제로 만드는 데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장벽이 하나 존재한다. 매우 적은 양의 접착제를 만드는데 홍합이 너무나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효율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홍합의 생체재료를 그대로 모방한 천연접착제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POSTECH 차형준 교수 연구팀은 미생물 배양을 통해 홍합이 만들어내는 접착 단백질의 유전자를 대량으로 복제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다.

네이처 글루텍 대표 차형준 교수
[그림 2] ‘도전! K-스타트업 2016’에 출연한 네이처 글루텍 대표 차형준 교수

 이 기술을 통해 홍합을 이용한 천연 접착제 개발의 효율성을 증대시킨 차 교수는 3년 전, 벤처기업 네이처 글루텍을 창립하여 본격적으로 홍합의 금속-카스텔 결합을 이용한 접착제를 대량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홍합 접착제는 특히 의료용 봉합제로 이용될 잠재력이 매우 큰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물속에서는 그 기능이 떨어지는 화학접착제는 체내 수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부 장기의 수술에 큰 문제를 드러낸다. 그러나 홍합으로 만든 천연접착제가 상용화되어 이를 수술에 이용하게 되면 이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또한 천연접착제는 기존의 봉합실이나 접착제보다 훨씬 생체 친화적이기 때문에 염증반응 등의 부작용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장점 또한 존재 한다.

 맛있는 음식으로만 생각했던 홍합이 이토록 놀라운 접착력을 보이는 것처럼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각자의 특출난 강점들을 가지고 있다. 오랜 진화기간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명들인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없어보이고 사람들이 무시하는 종일지라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나름대로의 자신 있는 점 한 두 가지 정도씩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네이처 글루텍의 홍합 접착제와 같이 자연 속 생물들의 강점을 본따 만들어 낸 기술들은 다양한 분야에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이미 잘 완성된 기술을 그저 사람에게 적용시키기만 하면 되고, 심지어 저작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는 생체 모방이야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경쟁력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인 것이다.

 제 1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이화여대 최재천교수는 이와 같이 생체 모방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을 의생학(疑生學)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의(疑)’자는 헤아린다는 뜻으로, 생명의 뜻을 받아들여 따라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재천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의생학이란 한 마디로 자연을 표절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의생학이 처음 적용된 예시는 옷이나 신발 등에 자주 이용되는 벨크로 테이프다. 벨크로는 스위스의 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사냥을 갔다 옷에 엉겨 붙는 도꼬마리 씨가 가진 갈고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발명한 물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소개한 네이처 글루텍의 홍합 접착제 역시 대표적인 의생학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의생학을 자동차 개발에 이용한 벤츠의 바이오닉 카
[그림 3] 의생학을 자동차 개발에 이용한 벤츠의 바이오닉 카. 거북복을 형상화했다.

 의생학의 활용분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러 교통수단의 발명과정에도 자연의 가르침이 숨겨져 있다. 일본의 철도회사 JR west는 고속 열차를 만들던 도중 터널에 들어갈 때마다 발생하는 폭음(Sonic Boom)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차의 개발자는 우연히 물과 공기를 오가는 물총새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게 된다. 그는 물총새가 두 매질을 옮겨갈 때 물방울 하나도 튀지 않게 얌전히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기차에 활용했다. 기차의 앞모양을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본따 만든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소리가 사라진 것은 물론, 더 적은 전력에도 기차가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이 탈것을 발명할 수 있도록 해준 자연의 도움은 단지 그 생김새를 알려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GM 오펠에서 발명한 바이오닉 카는 나무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에 대응해 스스로 재구성하는 매커니즘을 본따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 개발됐다. 생명이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생물학적인 전략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차의 가장 적절한 강도와 가격의 골격을 찾는데 이용한 것이다. 또한 벤츠는 거북복의 모습을 형상화한 바이오닉 카를 개발해 공기저항을 줄여 차의 연비와 안정성을 개선했다.

 의생학의 활용 분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도 자연의 모습을 본따 인간의 기술에 활용하는 의생학이 현재와 미래의 유망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는 흰개미의 집을 본따 만든 짐바브웨 하라레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다. 흰개미 무리는 자신들이 생활하는 개미탑의 위와 아래에 구멍을 뚫어 그 더운 사막에서도 시원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개미들은 생활공간을 위쪽에 뚫린 구멍들 아래에 집중시켜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이 위의 공기들을 밀어내면서 더운 공기를 집 바깥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아래쪽의 구멍을 통해 시원한 공기를 공급받아 집 전체를 낮은 온도로 유지시킨다.

흰개미 집의 원리를 본따 설계된 짐바브웨 하라레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그림 4] 흰개미 집의 원리를 본따 설계된 짐바브웨 하라레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건축가 믹 피어스는 이 원리를 쇼핑센터에 그대로 적용해 건물 아래쪽에 공기를 유입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많은 굴뚝을 통해 위쪽으로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그 결과, 섭씨 40도가 넘어가는 아프리카 한 여름의 더위에도 피어스의 건물 내부 온도는 24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것도 에어컨 단 한 대도 없이 말이다. 일반적인 아이디어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건물 만들기라는 과제가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는 흰개미 집의 원리를 통해 쉽게 해결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자연의 지혜는 하나의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설계하는 데도 유용하게 이용됐다. 인도의 계획도시 라바사의 도시 계획을 맡은 건축 팀 HOK는 Biomimicry 3.8과 협력하여 도시를 주변 자연환경의 특성에 맞게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라바사가 비가 많이 오고 습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들의 지붕 모양을 조금 특이하게 만들기로 했다. 무화과 잎의 모양을 본딴 지붕을 만들어 빗물이 빨리 제거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주변의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집들을 연결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홍수 때 심하게 쏟아지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했다. 이외에도 주변의 생태환경과 조경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설계된 라바사는 도시를 둘러 싼 주변의 자연과 하나 된 진정한 친환경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도시가 어떻게 유지될지 계속 주목한다면 우리는 자연의 지혜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예시들을 통해 자연과 생명은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긴 시간동안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는 아직 짧은 역사를 가진 불안정한 시스템인 반면 생태계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동적 평형을 유지하며 존재해 온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시스템과 자연의 힘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그들의 모습과 발전과정을 계속 따라가는 것도 문명 발전을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물은 답을 모를지 몰라도 자연은 답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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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POSTECH 생명과학과)
글을 통해 나의 지식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거운 평범한 생명과학도입니다.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 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물음에 대한 답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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