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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생태에세이] 잡아 먹혀서 ‘이동’하는 대벌레의 사투
오피니언 이탈 (2018-06-12 10:03)
예전에 시사다큐를 보는데 사회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소위 ‘양공주’라고 불리는 미군 부대 여인들에게 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느냐고 쉽게 탓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담배 하나 끊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그녀들에게 삶의 터전이 된 미군 부대를 어떻게 도망치듯 빠져나오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만큼 역사성이 담긴 공간을 져버리기란 어렵다. 정든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온몸을 걸고 싸워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다. 최근 <사이언스>에 소개된 대벌레 이야기는 유전적 다양성을 퍼뜨리기 위한 이동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대벌레의 경우,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일부러 새에게 잡아먹힌다고 한다. 대벌레는 매우 단단한 껍질의 알을 낳아서 새의 내장과 같은 산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많은 식물들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으로 새를 이용한다. 새가 열매를 먹고 식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배설을 하면 그 식물의 씨앗은 새로운 지역에서 자랄 수 있다. 그런데 곤충인 대벌레에게서는 좀 더 극적인 전략이 발견된 것이다. 스스로 잡아먹힘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알은 다른 곳으로,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대벌레는 스스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멀리 또 넓게 퍼져나갔다. 심지어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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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의 전략을 보여주는 도식. 사진 = <사이언스>

잡아 먹혀야 이동 가능한 대벌레의 숙명

걸어 다니는 잔가지 모양의 대벌레는 애완용으로나 연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키우기 쉽고, 도망가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기에 관찰하는 데 불편함이 적다. 10cm 길이 안팎의 대벌레는 나뭇가지로 위장하기에 유리한 색깔과 모양을 타고났다. 포식자를 만나면 대벌레는 죽은 척 하며 나무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대벌레는 성충이 되고 10여 일이 지나면 산란을 하게 되는데, 꽁지에서 쌀알 모양의 단단한 갈색 알을 땅에 떨어뜨린다. 

연구진은 직박구리(Hypsipetes amaurotis)에게 대벌레 3종의 알을 먹게 하였다. 직박구리는 중간 크기의 몸집을 지녔고 동아시아에서 흔하며 일본에서는 대벌레를 먹는 주요 포식 조류이다. 몇 시간 뒤 직박구리들은 알이 담긴 용변을 보았다. 연구진은 거기서 각각의 종을 발견했다. 알의 5%~20%가 무사히 살아남았다. 심지어 대벌레 한 종(Ramulus irregulariterdentatus)의 알 한 쌍은 부화했다. 

대벌레는 새에 먹히더라도 뱃속에서 소화가 되지 않도록 단단한 껍질을 가지는 방향으로 알을 진화시켰기에 이동이 가능했다. 또한 대벌레는 수컷 없이 암컷만으로도 생식이 가능한 점도 진화에 유리했다. 대벌레는 한 번에 600∼700개의 알을 낳는다. 만약 알이 하늘을 날지 못하는 동물한테 잡아먹히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대벌레의 유목 운명이 공생 생물에 달린 셈이다. 만약 대벌레의 새한테 먹히기 전략이 과거부터 써온 방법이라면, 대벌레 종의 다양한 유전학적 진화와 조류의 비행(이동) 경로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더 알아봐야 할 부분이다.

대벌레의 생존전략은 주변 환경 속에서 생존을 시험받아 몸에 응축된 결과다. 날 수 없고, 강하지도 않고, 겨우 나뭇가지 흉내를 내는 것으로는 험한 자연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음식도 찾아야 하고, 진화하는 포식자를 피해야 하고, 번식도 해야 하고, 쉴 공간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대벌레에겐 차이가 필요하다. 작은 차이로 생존과 죽음은 갈린다. 살아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는 것도 자연선택의 결과이며 진화의 의미를 드러낸다. 종종 유전학자들은 어떤 생물의 현세대 유전자와 앞 세대의 유전자는 정확히 똑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의 대벌레가 되기까지 앞선 수많은 죽음이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나뭇가지와 닮은 대벌레는 이동하기 위해 극적인 전략을 선택했다. 사진 = <브릭>

수많은 죽음이 원동력이 된 진화의 산물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동은 고달픈 일이다. 이사라도 한 번 할라치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많은 생물들은 이동하기 위해 기생 전략을 구사한다. 귀신고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사는 따개비는 원래 바다 속에서 부유하며 사는 동물이다. 그러다가 좋은 장소를 만나면 평생을 그곳에 정착해 살아간다. 귀신고래가 전 세계 바다를 유영하고 다니니 따개비의 입장에선 번식을 위한 최적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따개비는 귀신고래 몸에 박혀 함께 성장해 가는데, 새로운 장소로 이동(번식)할 때도 유리하다.

북아메리카의 어떤 파리는 향긋한 버섯을 맛있게 먹고 그 위에 알을 낳는다. 그 사이 버섯 안에서 번식하던 호바르둘라(Howardula)라는 선충류 기생충은 파리 유충에 달라붙어서 함께 떠난다.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레(Ribeiroia ondatrae)라는 편형동물은 숙주인 달팽이, 올챙이 등에 들어가 숙주의 몸을 기형적으로 만든다. 숙주가 포유류나 조류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먹히면 자기 새끼들도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어떤 기생충은 밀림개미를 숙주로 삼는다. 밀림개미의 배를 빨갛게 만들어 붉은 과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새가 밀림개미들을 잡아먹고 멀리 이동하여 배설을 하면 기생충은 자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이 자연을 더욱 다양하게 만든다고 했다. 다양한 자연을 위한 핵심은 바로 이동이다. 찰스 다윈의 ‘이주에 따른 종족번식 실험’은 유명하다. 다윈은 갈라파고스에 맨 처음 정착한 이주자를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의 씨앗이 바닷물에 표류했거나, 새에 붙어서 또는 새에 먹혀서 이주했을 것이라 가정하며 여러 실험을 했다. 씨앗을 오랜 시간 바닷물에 넣어두었다 발아시키거나, 새의 배설물을 모아 씨앗들을 족집게로 골라 심은 뒤 싹을 틔웠다. 또한 귀리 먹은 참새를 동물원의 독수리와 흰올빼미에 먹이로 주어 몇 시간 뒤 이들 배설물을 수집해 땅에 심어 발아를 관찰했다. 어떻게 옮겨 다녔는지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를 좌우한다. 

안치환의 <담쟁이>(이경임 시)라는 노래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누구도 뿌리 내리지 않으려 하는 곳에 뼈가 다 닳아 지도록 뿌리 내리는 저 여자(담쟁이) / 잿빛 담장에 녹색의 창문들을 / 무수히 달고 있네 / 질긴 슬픔의 동아줄을 엮으며 / 칸나꽃보다 더 높은 하늘로 오르네 / 마침내 벽 하나를 몸속에 삼키고 온 몸으로 벽을 갉아 먹고 있네” 어딘가로 이동(정착)하는 건 남이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누군가에겐 처절한 사투일지 모른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1.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드 용, 어크로스, 2017)
2. 『핀치의 부리』(조너선 와이너, 동아시아, 2017)
5. 다큐프라임 ‘기생’ 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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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교수신문> 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현재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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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회원작성글 최초여노  (2018-06-12 11:05)
대벌레로도 멋진 공생을 볼 수 있군요
회원작성글 이탈  (2018-06-14 10:49)
아, 비판적인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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