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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통신원   
[암(癌)에게서 배우다] <12회> Apoptosis vs Necrosis(2) ; 죽음의 트라우마, 그 잔인함에 대하여
오피니언 바이오휴머니스트 (2017-06-19 09:56)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1)>

지난 회에서는 세포의 자연스러운 죽음인 ‘세포예정사(a process of programmed cell death)’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바람직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번에는 ‘교통사고’와 같은 세포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인 ‘괴사(Necrosis)’에 빗대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세포가 괴사로 죽음을 맞이할 때는 세포 안 내용물들이 터져 나오며, 주변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등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 민족사에도 이와 같이 남과 북이 서로에게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강요하며, 안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 민족사의 비극적 ‘괴사’ 사건인 6.25 전쟁이 일어난 지 만 67년이 된다. 그때 그 시절 비참한 비극을 실제 겪으신 나의 장인어른 이야기다.

결혼 후 수년이 지나 명절이 되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찾아뵈었는데,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나와 처남에게 집 밖에서 술 한 잔을 하자고 하셨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돌아 마음에 담아두셨던 이야기를 꺼내 말씀해주셨는데 그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일곱 살 때 말이야, 6.25 전쟁이 일어났거든. 내 고향이 전라남도 화순인건 알지? 왜 그 지역이 지리산 근처라 그 시절 빨치산 활동이 워낙 대단했었지. 우리 아버지는 동네 마을 이장을 하고 계셨는데, 땅은 얼마 없어서 큰 부자는 절대 아니었어. 그런데 이 이장 역할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경찰이나 친정부편이어서, 그러니까 빨치산 입장에서는 반동! 이었던 거지. 당시 낮에는 경찰이 치안이 담당했지만,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와 동네를 휘저으며 다녔던 시절이었거든. 어느 추운 날 밤(제삿날이 음력 10월 6일이니까, 정확히 1950년 11월 15일), 집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 어린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일가족 일곱 명 모두를 다 결박해서 산으로 끌고 가는 거야. 그러더니, 한 곳에 세워놓고, 여러 사람들이, 아마도 빨치산 외에도 부역자들인 동네주민들이 함께! 죽창으로, 칼로 마구 휘둘러서 다 죽이는 거야! 다음날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와보니, 다 죽었는데 나 혼자만 피 흘리면서 울고 있더래. 나도 이렇게 머리, 얼굴, 등에 여러 군데 흉터가 남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는데, 여하튼 난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남은거지. 당시 분가해서 살고 계셨기에 화를 면하셨던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께서 이후 나를 거두어 주시고 키워주셨어. 그래서 때마다 찾아뵙는 거야.

그때 이후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대로 안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말이야, 하나는 반찬투정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야. 부모 없는 환경에서 남의 집 살이 하며 자라면서 반찬투정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먹을 수 있고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 그리고 어렸을 때 그 끔직한 일을 당하면서 말이야, 사람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됐어. 사람을 쉽사리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지. 생각해봐.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다 같이 알고 지내던 이웃끼리 그렇게 사람을 처참히 죽일 수가 있나? 아무렴 사람이 사람을 어찌 그리 잔인하게... 이런 일을 겪은 내가 철마다 무슨 억지 기대감이라도 가지고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나한테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요즘 같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정도 진단을 받고 정신과적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이셨을 테지만, 장인어른께서는 그런 도움도 없이, 스스로 트라우마를 이겨내시며, 지금껏 살아오신 것을 보면 그 순탄치 않았을 인생여정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장인어른께서는 정상적으로 대학교육까지 받으셨고 ROTC 장교로 군복무도 마치셨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시며 번듯한 가정도 일구시어 아들 딸 한 명씩 잘 길러 출가시키셨고, 딸은 현재 나와 함께 잘 살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드리는 헌사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덕수, 황정민 분)이 혼자 방에 들어와 아버지의 사진을 붙잡고 하는 독백은, 장인어른께서 근래 당신의 아버님을 생각하시며 하셨을법한 말인 것 같아, 그 생각을 하면 참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얼마 전 전화를 드렸더니, 장인어른은 오랜만에 사위가 반가우셨는지 이것저것 안부를 물으신다. 그러시곤 마지막엔 기우(杞憂)의 한 말씀도 덧붙이셨다.

“자네, 너무 자식들만 챙기지 말고, 애 엄마도 잘 좀 위해주게”
“네...”

아마도 장인어른께서는, 요즘 거의 매일 저녁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내 모습을 보신다면, “기(杞)나라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하지’라고 했던 쓸데없는 걱정을 나도 했구먼” 하실 것이 틀림없다:-)

6월의 맑고 시원한 저녁, 오늘은 아내와 함께 산책이나 하련다...



※ 그림 인용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OCIS_Korea_Geojedo_POW_Camp_Historic_Park_01_(1001015789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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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휴머니스트(필명)
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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