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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41] 실험실은 육체노동의 현장이다
오피니언 변서현 (2019-05-07 13:05)

 필자는 4년째 면역학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장내 미생물과 숙주의 면역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마우스를 이용해 동물실험을 하고, 마우스의 장을 분리해 면역세포를 분석한다. 박테리아를 키워서 마우스에 먹이기도 하고, 마우스의 똥을 모으기도 한다. 꼬리를 자르거나 피를 뽑아 유전형을 분석하는 것도 있다. 특수한 마우스를 다룰 때는 직접 사료와 식수를 준비해서 넣어주어야 한다.

 연구실에서 상주하는 대학원생이 되면서 가장 크게 깨닫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학부생 때 기본적인 실험을 배우는 수업에서도 실험에 필요한 시간이 어마어마하고 쉬는 시간 없이 내내 움직여야 한다는 걸 체험했는데, 대학원생이 되어 실험을 진행하고 살아있는 동물을 다루기 시작하니 체력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연구실의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학원은 공부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만 상상하고 왜 몸이 힘든 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교수님들 중에도 실험의 자세한 과정을 모르는 경우에는 어느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모르기도 한다.
 
 필자가 많이 하는 실험의 예를 들어보자. 마우스의 소장과 대장에서 면역세포를 분리해내는 일은 필자의 연구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실험이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실험이다. 연구실 내에서는 주로 ‘장 프렙(preparation)’ 이라고 지칭한다. 실험을 진행하는 당일은 아침 일찍부터 마우스의 배를 갈라야 하기 때문에, 모든 시약과 재료의 준비를 전날에 마쳐야 한다. 조직과 세포를 넣을 완충 용액을 수 리터 가량 만들고, 네댓 가지의 액체 배지를 종류별로 만들어 튜브와 플레이트에 미리 덜어 놓는다. 그것만 해도 혼자 하려면 하루 종일이 걸린다. 당일에는 평소에 입던 옷보다 훨씬 편한 옷을 입고 나오는 편이다. 평균 10마리의 장과 림프 기관들을 분리하는데 한 시간 가량을 소비한다. 여기서부터는 장의 여러 층을 하나씩 분리해가면서 필요한 세포들이 있는 부분을 모으는 과정이다. 끝나는 시간은 숙련된 연구자가 했을 때 오후 2~3시 정도다. 이제 분석할 세포가 준비된 셈이다. 점심식사는 중간에 장의 연결조직들이 효소와 만나 분해되는 45분 정도의 반응 시간에 빠르게 끝낸다. 이 때부터 세포의 표현형을 확인하기 위해 형광 항체 같은 것들을 붙이는데, 이 과정은 서너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오후 5시 가량이 되어야 처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결과를 보기 위한 준비일 뿐, 분석을 완료하기까지는 며칠이 더 필요하다.

 작년에는 이 실험을 일주일에 세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추석 연휴 직전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연휴에 고향에 가서 잠만 자다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다른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 동기들에게 “나 오늘 장프렙 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위로의 말이다. 2017년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때에도 필자는 장프렙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진에 의한 정전과 계속된 여진 때문에 체력과 평정심을 동시에 잃어버려서 혼자 세포배양실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전기가 복구되는 것을 기다렸다가 실험을 마무리했는데, 진이 다 빠져 집까지 돌아오는 길이 유독 힘들었다.

 이런 큰 규모의 실험 말고도 연구실 내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체중을 측정해야 해서 주말 내내 실험동물실에 들어가 수십 마리의 마우스를 저울 위에 올리고, 내 생활 리듬이 아닌 세포의 리듬에 실험 일정을 맞춰야 해서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가는 것은 예삿일이다. 필자처럼 동물실험을 하는 곳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생명과학 연구실은 육체노동의 모습이 쉽게 드러난다. 식물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은 매일같이 화분을 옮기고 흙을 나르며 온실을 살핀다. 가끔은 일광 리듬에 따른 변화를 확인해야 해서 새벽에 겨우 일어나 연구실에 갔다가 30분 만에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하기도 한다. 화학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는 세포에 처리할 물질을 합성하고 분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장비 앞에 서 있는 일이 일상이다.

 하지만 연구실 안팎에서 이런 육체노동들은 사소한 것들로 취급 받고 평가 절하되기 일쑤다. 실험을 진행할 때에 재료비의 측면에서 얼마의 돈이 드는지 계산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몇 명의 인력이 몇 시간 동안 투입되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체력을 소모하는지 파악하는 경우는 연구자 본인을 제외하고는 드물다.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실험을 ‘전담’하는 연구 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의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육체노동은 실험실의 대학원생과 박사들이 나누어 맡게 되고, 그만큼 각자의 연구 프로젝트의 진척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연구’와 ‘노동’이라는 두 단어가 서로 연결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노동’에는 화이트 칼라의 지식 노동과 블루 칼라의 육체 노동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실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적 오류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고1, 실험에서의 육체노동을 보조하는 인력들을 고용해 연구자의 일손을 보태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은 오래 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2

 주변 대학원생들과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복잡한 실험을 대신 해주는 기계를 만드는 건 어떨까? 쥐를 넣으면 세포가 나오는 거지.”

 “아마 안될 거야. 대학원생의 인건비가 장비 개발하고 구입하는 비용보다 쌀 거거든.”

 한국의 많은 조직 사회가 그러하듯, 연구실 또한 몇 안되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연료 삼아 굴러간다. 연구가 즐겁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체력을 깎아 만들어낸 연구결과보다는 건강한 동료로 꾸려진 건강한 팀이 만들어낸 연구결과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지난 5월 1일은 대부분의 연구자가 쉬지 못하고 일했을, 노동절이었다.


※ 주석
1 국가인권위원회,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 (2015)
2 권경훈 (2013.8.19), 생물학 실험실의 ‘소’는 누가 키우나. 대덕일보.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78301

 

변서현

변서현
면역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장내 미생물과 숙주의 면역계 발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스스로 '과학하는 여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며, 즐겁게 과학하는 평범한 시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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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4
회원작성글 늘그니  (2019-05-07 20:06)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농담이 기정사실이라는것이 마음이 아프네요
회원작성글 SnakeDoctor  (2019-05-08 08:14)
가끔은 자신이 연구자인지 가내수공업 노동자인지 헷갈릴때가 많더라구요.
반복적인 작업을 하느라 지켜서 정작 논문 읽고 다음 실험을 뭘해야할지 고민할 기력이 없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 연구실은 대학원생에 의존적인 시스템인데 이는 장기적으로는 지속이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박사 학위를 따고도 갈곳을 찾기가 어렵다면 필요이상으로 박사급 인력이 배출되는거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은 줄이고 대신 특정 실험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연구원을 확충하는쪽으로 생태계가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다 돈이 문제죠. 대학원생처럼 값싸고 노예처럼 부려먹을만한 대체제가 아직은 없으니깐요.
회원작성글 나무욜  (2019-05-08 14:36)
글 잘 읽었습니다. 대학원생의 생활이 현실감있게 잘 나타나고 한편으로 과학계의 현실에 마음이 무겁게 짓눌립니다. 기계가 도입되기 어려운 실험분야는 사람이 결국해야 하는데, 외국처럼, 단순 테크니션부터 고급 분석인력까지 다채로운 인력의 도입이 되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1부터 10까지 모든걸 다 해내야 하는 대학원생은 그야말로 만능이 되어야 하고, 현실은 정말 연구다운 일에 시간을 쓰기가 참 힘든 구조죠.
회원작성글 동물학전공  (2019-05-12 18:00)
저도 쉬는 시간 없이, 동물 실험을 하다 보면 정말 하루가 무슨 인간이 아닌 거의 로봇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간단하게 배지 만드는 것이나 멸균이나 세척은 타과 전공자가 아니여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알바생을 따로 두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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