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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12]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오피니언 문성실 (2018-09-18 10:34)

미국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상( Breakthrough Prize)1’의 올해 수상자로 영국의 여성 천체물리학자인 조셀린 벨 버넬 (Jocelyn Bell Bernell) 옥스퍼드대 객원교수가 선정되었다. 196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24세의 대학원생이던 벨 버넬은 자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서(Pulser)2를 최초로 발견했다. 1974년 펄서 발견의 공로로 그의 지도교수인 앤터니 휴이시(Anthony Hewish)와 마틴 라일(Martin Ryle)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나, 최초 관측자인 벨 버넬의 이름은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없었다. 노벨상 수상 탈락은 그가 대학원생이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았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원생이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벨 버넬 교수는 ‘캠브리지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에 걸린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이야기했다3. ‘가면 증후군’은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나는 자격이 없는데 운으로, 또 주변 사람들을 속여 이 자리에 온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불안해 하는 심리를 지칭한다. 북아일랜드 출신인 벨 버넬 교수는 자신이 캠브리지에 입학한 것 자체에 의심을 가졌었고, 캠브리지의 학생들은 다 똑똑한 것 같았고, 학교에서 자신을 내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불안에 시달렸다고 이야기한다.

1978년 심리학자 폴리 클랜스와 수잔 임스4가 처음으로 발표한 ‘가면 증후군’은 높은 성취를 거둔 여성의 경우 70% 이상이 한번 혹은 그 이상 경험한 적이 있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며 만성적으로 자기 의심과 지적 사기의 감정이 남성에 비해 강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특히, 여성과학기술자들의 ‘가면 증후군’에 대한 직면은 세계 과학기술계에 있어서 각국의 미래 산업을 위한 인력 양성의 일환으로 여성 과학기술자들을 육성하는 데 있어 제도적 문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걸림돌로 제기되고 있다.

왜 ‘가면 증후군’을 여성 과학기술자들이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첫 번째는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현대의 양성평등을 외치는 사회에서 조차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법대의 조안 C. 윌리엄즈 교수팀5의 연구에 따르면, 약 34%의 응답자가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office mother, dutiful daughter)을 자신이 처한 연구 환경에서 강요 받는 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경우 여성은 조신해야 하고 나대면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해 학업적, 사회적 성취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짓누르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두 번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다.
한국의 대학, 공공연구기관, 민간 연구기관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여성 보직자와 연구 과제 책임자의 현황은 여전히 10%를 밑돌고 있다6.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좁게 느껴지는 상향 이동에 대한 부담감과 기초과학 연구에 있어서 낮은 보상은 좌절감과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여성의 정형화된 역할이다.
윌리엄즈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약 2/3의 응답자가 모성이라는 벽 앞에서 아이를 가진 후, 전업주부 아내를 둔 남성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으며, 한 응답자는 “내가 좋은 과학자이자 엄마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겹게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과학기술자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아내, 엄마, 며느리의 역할이 더해져 여성들을 “슈퍼맘”이라는 프레임에 가둠으로 일과 가정 양립에 있어 어느 한쪽도 완벽하지 못함을 스스로 자책하게 만들며, 자신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성취가 의심받거나 평가절하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다시 벨 버넬 교수로 돌아가 보자. 그는 어떻게 ‘가면 증후군’을 극복했을까? 그는 자신이 생존자 본능으로 투쟁했다고 이야기한다. 더 철저하고 더 악착같이 관측에 매달렸으며, 쫓겨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지도교수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관측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천문학에 있어서 혁명적인 신호인 펄스를 관측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후 결혼을 통해 관측천문학계를 떠났지만, 지역을 옮기며 비정규직으로 끊임없이 여러 경력을 쌓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 물리학연구소 소장, 영국 왕립 천문학교 회장을 역임할 수 있었고, 여성과학자의 역할 증진을 위한 시니어여성과학자 모임을 만들고 ‘여성을 위한 최고의 대학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7. 그의 삶은 ‘가면 증후군’과의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프레임을 재설정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했고 자신의 성취와 그에 상응하는 자리에 당당하게 섰다.

가면 뒤에 있는 현대의 여성과학자들에게는 벨 버넬 교수와 같은 프레임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편견,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일-가정의 양립으로 인해 스스로를 낮추거나 자책하거나 의심하거나 짓누르며, 자신을 가면을 쓴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면, 과감한 도전이나 기회 앞에서 위축될 수 있다. 자신의 삶과 연구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을 가져보자. 작은 문제와 벽 앞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점검하고 쿨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비움의 자리를 가져보자. 비슷한 배경과 경험을 자신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자리를 가져보자.

벨 버넬 교수는 자신이 소수(minority)이자 아웃사이더라는 자각이 펄서를 발견한 추동력이 었다고 이야기한다. 노벨상을 빼앗긴 여성 대학원생이 자신의 위축됨을 극복하고 40여 년 후 노벨상에 버금가는 ‘브레이크스루 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300백만 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그 소수(underrepresented groups)의 물리학도를 위해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아직은 소수인 이 땅의 여성과학기술자들, 사회적 편견과 개인적 자의식 사이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그들과 동일하게 ‘가면 증후군’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한 여성 과학자로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지금의 당신은 운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능력으로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 주석
1. https://breakthroughprize.org/;브레이크스루상은 실리콘밸리 투자자인 유리 밀너,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부부, 구글 공동설립자 세르게이 브린 등이 설립한 상으로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올린 학자들을 격려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상금(노벨상의 3배)을 수여해 보다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이끄는 상이다.
2. 펄서(Pulsuer), 맥동전파원, 고도의 자기화된 관측 가능한 전파의 형태로 전자기파의 광선을 뿜는 자전하는 중성자별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3.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8/sep/06/jocelyn-bell-burnell-british-astrophysicist-overlooked-by-nobels-3m-award-pulsars
4. http://www.paulineroseclance.com/pdf/ip_high_achieving_women.pdf
5. https://hbr.org/2015/03/the-5-biases-pushing-women-out-of-stem
6. 2016년도 여성과학기술인력 현황,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ISSN 2005-7032)
7. http://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11081

문성실

문성실/ 평범한 여성 미생물학자
순수 국내파 미생물학 박사로 현재는 미국에서 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결혼을 통해 가정이란 또 하나의 일터를 가지고 있으며, 두 아이와 과학놀이를 즐기는 평범한 여성 미생물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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