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G-WINDOW 처리영역 보기]
즐겨찾기  |  뉴스레터  |  오늘의 정보 회원가입   로그인
BRIC홈 동향
2019 연재자 모집
스폰서배너광고 안내  배너1
전체보기 Bio통신원 Bio통계 BRIC View BRIC이만난사람들 웹진(BioWave)
목록
조회 1329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바이오통신원   
[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야기 1.] 프롤로그: 100년 전의 세상
오피니언 김택중 (2018-05-10 11:40)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 시대는 거칠게 묘사하면 세상이 온통 제국들과 그 식민지들로 양분되어 있던 때였다. 한국 역시 시대의 흐름에 뒤질세라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인 1897년 국호를 급히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청국(淸國)과 동등한 황제국임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제국은 오직 국호로만 제국의 명맥을 유지하다 제국 선포 불과 13년만인 1910년 다른 비서구 제국 중 하나였던 일본제국(이하 일제)에게 멸망당하고 그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다시 8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피지배자 처지가 된 식민지 조선의 한국인들은 강력한 헌병경찰제도를 핵심으로 한 일제의 무단정치 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일제를 포함한 근대 제국들의 식민 지배는 식민주의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외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즉, 그것은 식민 지배자의 종족 우월성과 문화적 배타성을 기반으로 피지배자의 “사회 전체가 자체의 역사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타인에 의해 조종되며, 식민 (지배)자의 필요에,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필요와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관계”에 놓임을 의미했다.1)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한 번이라도 억지로 지배당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역사적 관계가 피지배자들의 삶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내몰았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제국들의 식민주의가 가지는 이러한 폐해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을 필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집약하곤 한다.

첫째, 노골적인 제국 예찬론자들. 저서 『로마인 이야기』가 번역 소개되면서 한때 많은 한국인들이 현자로 칭송했으나 그간 일련의 발언들을 통해 정치적 극우임이 드러난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오노 나나미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2) 놀랍게도 근래 나나미는 서구인들이 민주주의의 효시라 찬양해 마지않는 고대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작을 집필하였다! 위대한 우리 고대 제국의 허구적 영광을 현재의 열등감과 맞바꾸려는 민족주의 쇼비니스트들은 또 어떠한가?

둘째, 정치적 뉴라이트와 연계된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이들은 식민 지배자들이 남긴 데이터를 수량화한 통계라는 수학 무기를 내세워 일제의 식민 지배가 이후 한국 근대화의 실체적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일제가 남긴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서구식 근대화(modernization)를 소위 역사 발전 단계의 필수 조건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내재적 발전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강박적인 모더니스트들이라 할 만하다.

셋째, 절대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이들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fact of the past)까지 무시해 가면서 이야기 만들기에 골몰하고, 따라서 역사학의 기본인 사료적 사실과 역사적 해석 사이의 조심스러운 균형 잡기에도 관심이 없다. 압도적인 역사적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담론 우위의 입장에 서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유대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을 아예 부인하는 이들이 아마도 이러한 부류에 속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그저 몰역사적 반달족이거나 비겁한 음모론자들에 불과하다.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근대 제국들의 식민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실질적인 서곡이 된 사건이 바로 1918년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참전국 중 하나였던 영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단순히 대전(Great War)이라 불렀던 이 전쟁은 1914년 7월 28일 시작되어 1918년 11월 11일 11시까지 유럽 전선을 주 무대로 만 4년여 간 이어졌다. 식민지에서의 전쟁이 아닌 식민 본국인 서구 제국들 간의, 그것도 본국 영토 내에서의 본격적인 격돌 결과, 패전한 제국들은 해체되었고 승전한 제국들 또한 예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 채 쇠망과 해체의 길로 접어들게 됨으로써 기존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 가운데 식민 지배 하의 많은 약소민족들이 이른바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여 정치적 독립의 희망을 품게 되었고, 종전 후 실제로 일부 민족국가의 독립이 성사되었지만 승전국의 식민지들은 기본적으로 예외였다. 대전 기간 동안 승전국 편에 섰던 일제의 식민지 한국 역시 그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식민지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한국인의 만세독립운동은 따라서 헌병경찰을 동원한 일제의 무력진압이 아니었더라도 처음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운명에 처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사건들을 골격으로 한 이상의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19세기에 이르러 역사학이 서구 대학의 학과로서 전문화되고 역사가들이 전문직화되면서 정치사 중심으로 재편된 학문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즉, 근대 역사학이란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및 그 국가와 다른 나라의 관계를 다루는 정치사”였다.3)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은 이러한 정치사 전통을 뛰어넘은 지 오래이다. 그리고 주변 학문들의 지식과 방법론을 차용하여 그 외연을 끝없이 넓혀가는 중이다. 따라서 현대의 역사학자 중 정치사가임을 자처하는 이를 찾기란 오히려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나 3·1 운동과 같은 정치적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역사적 접근 및 서술이 가능하다. 필자는 이를 필자의 전공 분야인 의사학(醫史學, History of Medicine)의 시선으로써 재구성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잊힌 역사적 연결고리이자 소재로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주목하고자 한다. 앞서 ‘잊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까닭은, 필자가 아는 한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역사학 교과서의 제1차 세계대전사 서술들 어디에서도 20세기 최초의 전 지구적 역병인 이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명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라 불리는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단일 원인으로 발생한 20세기 최초이자 최악의 인구학적 재난이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여에 걸쳐 진행된 제1차 세계대전이 900만~1,000만 명의 전사자를 낳았다면, 1918년 봄부터 1919년 봄까지 단 1년여 동안 범유행한 인플루엔자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2,000만 명 이상, 많게는 1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만한 규모의 자연 재해가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이 더 이상하고 무책임한 일 아닌가? 왜 사람들의 기억에서, 역사학자들의 책상머리에서 1918년 인플루엔자는 그만 잊힌 역병이 되어 버렸던 것일까? 이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하나씩 천천히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 격전지였던 프랑스 베르됭의 참호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인 프랑스 병사들. 지리한 참호전과 참호 내의 열악한 환경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사진 설명: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 격전지였던 프랑스 베르됭의 참호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인 프랑스 병사들. 지리한 참호전과 참호 내의 열악한 환경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 Wikimedia

※ 주

1) 위르겐 오스터함멜(2003), 『식민주의』, 박은영, 이유재(공역), 서울: 역사비평사, 2006, p. 32.
2) 한국에서 『로마인 이야기』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1997년에 이미 고려대학교 사학과 김경현 교수가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한 바 있다. 김경현(1997), 「‘시오노 나나미 현상’과 역사 바로 읽기」, 『역사비평』, 통권 39호, pp. 162-175 참조.
3) 리처드 에번스(1997), 『역사학을 위한 변론』, 이영석(역), 서울: 소나무, 1999, pp. 217-218.

  추천 2
  
인쇄하기 주소복사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김택중 (인제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책상머리 지킴이 업(業)인 의사학자(醫史學者)입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보기 >
[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야기 3.] 인플루엔자는 언제부터 독감이라 불린 걸까?
한국에서 인플루엔자를 독감(毒感)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궁금해서 웹상의 각종 학술 데이터베이스와 연구서, 나아가 언론 기사들까지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검색 능력이 미흡한 탓인...
[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야기 2.] 1918년 팬데믹을 연구하게 되기까지
내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무렵이다. 시내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지나 콜라타(Gina...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댓글 0
등록
라이카코리아
연구정보중앙센터
위로가기
동향 홈  |  동향FAQ  |  동향 문의 및 제안
 |  BRIC소개  |  이용안내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BRIC. All rights reserved.  |  문의 member@ibric.org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RSS서비스 RSS
1550951053 0.76717800
1550951054 0.22824600
0.46106791496277 초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