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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통신원   
[창조과학연속기고-14] 그래도 생물은 진화한다고
오피니언 김준 (2017-09-14 09:53)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의 지도교수는 아주 대단한 창조과학자였는데, 어느 날 연구실 모두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동네는 길거리에 널린 돌멩이조차 화석일 정도로 화석이 즐비한 곳이었다. 일행 대부분이 지도교수에게 화석이 흥미롭지 않냐고 물었지만, 지도교수는 영 껄끄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는 화석을 믿지 않는다. 화석은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이 땅에 내린 것이다." 그는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수업 시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복잡한 생명현상이 진화로 나타날 수 있겠느냐”며 괴이한 주장을 했다.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개신교 학교였는데, 한 번은 종교 시간에 대단히 편협한 사례를 바탕으로 생명이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시청하게 했다. 그 영상은 "화학 반응으로 생명이 생겨날 수 있다면 땅콩버터 공장에서는 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가?" "화학 물질로부터 세포가 만들어질 확률은 0에 한없이 가까운데 이걸 믿으라는 건가?" 등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황당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해당 과목 교사는 우리에게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그래도 생명은 진화했다!”라고 답했고 목사이기도 했던 교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열일곱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한국에선 유달리 창조과학이 인기인 듯 하다. 교황 비오 12세가 이미 1950년에 진화론과 창세기가 모순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2014년에도 교황 프란치스코가 신이 있었기에 빅뱅과 진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냐고 연설했지만, 한국의 일부 종교 단체는 그렇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의 열성적 활동은 창조과학이 마치 진화론이 대등한 지위를 놓고 겨룬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터키가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역시 "형제의 나라!”라는 실소가 나오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화론은 신이 존재하는지, 혹은 생물이 창조되었는지를 다루는 지식체계가 아니다. 진화론은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는지 혹은 일어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데 몰두한다. 진화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구체적인 기제들을 연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현재 관찰하고 있는 진화의 현상이 어떤 변화로 인해 촉발되었고, 실제로 해당 생물체가 지닌 특성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예를 들어 새로운 핀치 종은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바퀴벌레는 어떻게 해충약을 피할 수 있게 된 건지, 물고기 친척은 어떻게 뭍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뱀은 어떻게 다리를 만들지 않게 된 건지,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는 학문이 진화론이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진화론에도 빈틈이 많고 여전히 채워야 할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함은 진화론이 본질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직 생물학자들이 파헤칠 수 있는 자연의 신비가 넘쳐남을 의미할 뿐이다. 진화론의 오랜 경험과 지식은 생물학자에게 더 새롭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제 생명체를 더욱 자세하고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는 각종 실험 기법들이 보다 값싸지고 쉬워지면서 예전보다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더 많아졌다. 생물학자들은 진화라는 큰 그림을 저마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채워나가는 중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럼 왜 진화론을 공부하는 거예요?" "글쎄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진화론이 생물을 이해하는 가장 그럴 듯하고 재미있는 방식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대로 어떤 때는 '이게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말하고, 설명을 못하겠을 땐 '이건 신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재미 없으니까요." 과학자로 살아가는게 힘든 시절이지만, 연구할 거리가 많다는건 때로 과학이란 활동을 즐겁게 해준다. 과학하기란 그런 것이다.


김준
김준 : 연구실에서 벌레 밥 주며 진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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